1990년대 후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열풍은 당시 TV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었던 일본을 넘어 한국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세컨드 임팩트’의 충격으로 인류의 절반이 사망하는 참극을 겪은 지구, 국제연합군과 사도의 전투에 휩쓸리게 된 소년 '이카리 신지'는 아버지 '이카리 겐도'가 이끄는 특무기관 내르프에서 극비리에 개발 중인 인간형병기 '에반게리온'의 파일럿이 되어 제3동경시를 공격하는 의문의 적 사도에 맞서 같은 인간형 병기를 타는 레이, 아스카 등의 동료들과 함께 인류의 생존이 걸린 전쟁을 하게 된다.
1995년 10월 3일에서 이듬해인 1996년 3월 26일까지 전26화로 TV도쿄에서 방영되며 당시 '에바 신드롬'이라 불리는 사회현상까지 일으켰고 '오타쿠'라는 사회 집단을 재조명하게 만든 작품 <신세기 에반게리온(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의 전설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왜 애니메이션 한편이 '에바 신드롬'이라 불려질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며, 그것을 본 사람들이 이 작품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게 된 것일까? 이전까지 일반적인 TV 애니메이션이 꿈과 희망, 도전을 얘기하고 있었다면 에바는 세기말적 분위기와 인간의 고독, 타인에 대한 몰이해, 염세, 주인공의 절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는 사춘기 소년의 처절한 몸부림은 현세대의 젊은이들에게 깊은 공감을 사게 했다. 에반게리온의 주인공이 처한 고민과 상황이 그 당시 시청자들에도 자신이 처한 현실의 문제로 공감을 느끼게 된 것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25, 26편의 일반적인 시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결말이 팬들 사이에 여러 가지로 해석되면서 이 애니메이션은 작품을 넘어 사회 현상으로 바뀐다. 애매한 결말은 1997년 2편의 극장판으로 제작된 <신세기 에반게리온 데스 & 리버스>와 < 신세기 에반게리온 -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만들게 했지만, 극장판의 마지막 역시 애매한 결말을 맞으면서 혹은 TV판의 재탕이라는 비난과 함께 막을 내렸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07년 9월 1일, 일본 전역 84개관에서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서(ヱヴァンゲリヲン新劇場版:序 EVANGELION:1.0 YOU ARE (NOT) ALONE)>가 개봉하게 된다.
이 작품이 관심이 가던 때에 부산국제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상영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부산에서 이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2. 본문
솔직히 얘기하자면 본인은 이전까지 에반게리온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작품을 떠나 이 작품을 만든 사람과 이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 때문이었다. 첫째로 이 작품을 만든 사람 더 자세히 들어가면 안노 히데아키 (庵野秀明)감독에 대한 실망이다. 그는 훌륭한 애니메이터이며 크리에이터다. 그가 이전까지 만들었던 <건버스터(トップをねらえ!)1988>나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ふしぎの海のナディア)1990>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에바는 또다른 충격이었다. 그렇게 애니메이션의 재미를 이해하고 있던 사람이 그 재능을 잘못된 방향 쉬운 얘기로 '성의 없는 잔머리'로 때우고 있었던 것이다. 에바는 1, 2편의 훌륭한 연출은 이후 걸핏하면 나오는 정지영상과 성우들의 독백으로 채워졌다. 나디아에서도 섬에서의 일상에서 작화가 나빠진 경우가 있었지만, 에바는 26화가 방송될 때 까지 '애니메이션적 재미'는 잃어버리고 오로지 감각적인 연출로 그 부분을 매우고 있다. 내가 화가 났던 부분은 이 부분이다. 충분한 재능을 가진 천재가 대중을 상대로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소년점프에 연재중인(정확히 말하면 휴재와 연재를 반복하고 있는...) 헌터X헌터의 작가 토가시 요시히로(冨樫 義博)가 연재 중에도 콘티처럼 휘갈긴 그림으로 때우는 것과 같다. 재미는 충분히 있다. 하지만 성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프로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행위다. 또하나는 에바를 이용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에바 신드롬'은 당시 거품경제이후 마땅한 수익을 찾지 못하던 일본에서 오타쿠라는 새로운 소비 집단을 찾게 한 계기가 되었다. 오타쿠가 전면에 나선 것은 그들이 지불하는 막강한 소비력에 힘을 얻게 된 것이고, 그것이 당시까지 있었던 오타쿠의 부정적 인식까지 무시할 정도의 힘을 얻게 된다. 그것이 이후 세기말적인 분위기에 애매하고 난해한 내용을 섞은 '에바의 짝퉁'을 양산하게 되거나 '팔릴만한 요소만 적당히 조합해서 있어보이게 포장하고 미소녀들을 첨가한 작품들로 오타쿠라는 '그들의 봉'을 만들어 버린다 나같은 에반게리온 전세대의 애니메이션 팬이라면 이런 부분에 대해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것은 지금까지 저나 다른 분들이 생각했던 애니메이션이란 의미가 에바로 인해 많은 부분 변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2006년 에바의 감독이었던 안노 히데아키는 개인스튜디오 스튜디오 카라로 독립하면서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프로젝트를 발표한다. 각각 서(序), 파(破), 급(急), 완결편(제목미정)의 4부작으로 발표된 이 프로젝트를 들었을 때의 나의 첫 반응은 "또 재탕인가?"였다. 위의 2가지의 과거 인식 때문에 이런 부정적인 첫 반응은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극장판을 보기위해 부산까지 간 이유는 같이 상영되었던 '피아노의 숲(ピアノの林)'과 '애플시드'를 보면서 보너스로 볼 예정이었던 작품이고, 애니메이션 자체보다는 그것을 보러 오는 팬들의 모습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상영 당일 5,000여명이 들어간다는 야외무대에서 폐막식이 진행되고 신극장판의 제작진인 츠루마키 카즈야((鶴巻和哉)감독과 프로듀서 오오츠키 토시미치(大月俊倫)의 인사말과 함께 영화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사람들은 그 어느 영화보다도 집중을 하며 영화를 보고 있었다. 마치 영화 <본얼티메이텀(The Bourne Ultimatum)>의 건물 격투신을 보던 관객들처럼 숨소리를 죽여 가며 영화에 집중하게 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스크린을 뚫어지게 주시하는 필자도 있었다. 작품은 TV판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거의 대부분 새로 그린 작화였다. 성의 없는 작화가 아닌 모든 부분 정성을 드렸다는 것을 화면에서 느낄 수 있었다. 3D 애니메이션을 많이 도입하면서도 전작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작업되었고, 정지컷 같은 건 없었다. 짧은 시간 속에서도 주인공 신지나 레이, 이카리 겐도 등의 캐릭터들에 대한 연출도 허술함이 없이 풀어 나갔다. 그리고 영화 중반이 지나갈 무렵 나는 깨닫게 되었다. "안노가 돌아왔다. 진정한 왕의 귀환이다" 영화의 절정 다이아몬드형 사도인 라미엘이 등장하는 '아시마 작전'에서 관객들은 숨을 죽이며 영화를 감상했고 마지막 장면에서 바뀐 스토리에서 "와~"라는 환성을 질렀고 엔딩크레딧이 지난간 후 TV판의 예고편과 같은 연출인 극장판 파(破)의 예고편에서는 환호성과 박수가 이어졌다. 나 역시 힘차게 박수를 같이 칠 수 밖에 없었다.
안노 감독은 어째서 10년 전에 끝을 낸 <에반게리온>을 다시 완결 지을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여기부터는 필자의 개인적 주관에 근거한 글이므로 다소 다른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신극장판은 기존의 에바팬인 오타쿠들(정확히는 3세대 오타쿠)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일반대중들을 위해서도 만들어진 것이었다.영화를 끝내고 나온 감상평은 "안노가 결혼하더니 이제 사람이 되었다"란 것이었다. 그것은 1995년 에바를 만들 당시의 안노의 시각과 신극장판에서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이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안노는 당시의 세상을 바라보던 시점을 그대로 에바라는 작품을 통해 쏟아 넣었다. 어찌 보면 한 오타쿠의 마스터베이션과 같은 것이었다. (제가 에바의 전작들을 보면서 불편했던 심정도 그런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의외로 히트를 친다. 아니 안노 자신이 감당 못 할 정도의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온 극장판은 안노가 이런 생각으로 만든 게 아닐까 생각한다. "니들이 원하는 게 이런 거지? 오타쿠들아 이거나 먹어라! 이것도 좋으냐?" 에바 신드롬의 극장판 이후 서서히 하향곡선을 그리며, 과거의 신화가 되어버렸다.(물론 계속 만화나 게임, 캐릭터 부가 상품은 나오고 있었지만...) 이후 안노는 실사 영화를 제작하거나 다른 사람의 원작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등의 다른 작업을 해 왔다. 그리고 어느덧 만화가 안노모요코(安野モヨコ)와의 결혼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서서히 변화되고 있다는 것은 부인의 단편 만화집인 <감독부적격>에서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부부생활을 다뤘던 이 만화는 오타쿠였던 안노의 과거와 결혼 후에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러면서 그가 알지 못하던 세계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고 오타쿠였던 안노가 세상을 향해 조금씩 걸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에게 명성을 안겨줬지만, 스스로에게 거북하게 느끼고 있었던 에바라는 작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에바를 만들 당시의 자신을 생각하면서 그것을 다시 수정하고 싶고 완결하고 싶었던 생각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자신의 작품이 일반대중들까지도 이해하고 알아봐 주는 작품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한다. 그는 이제 일반 대중들과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3. 마무리 2007년 9월 1일 토요일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서(ヱヴァンゲリヲン新劇場版:序 EVANGELION:1.0 YOU ARE (NOT) ALONE)>은 일본 신쥬쿠의 시네마스퀘어를 위시한 일본 84개관에서 일제히 개봉되었다. 영화는 개봉 주말 이틀간 총 23만 6천명, 2억 8천만엔의 흥행수입을 거둬 들리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는데, 전국 100개 이하의 스크린에서 개봉한 영화가 흥행 정상을 차지한 건 흥행통신사가 2003년 12월 공식적인 일본 내 흥행집계를 시작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다. 또한 성인지향의 애니메이션이 박스오피스 1위를 하는 것 역시 놀라운 일이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호의적인 반응과 마지막 예고편을 지켜본 후에 박수를 치게 했다고 한다. 이후 에바는 오랫동안 박스오피스를 지키고 있었다. 아마 에바를 본 관객들이 모두 오타쿠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이 작품은 일반인들에게도 통하는 작품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작품 감상을 하면서 에바라는 작품에 대한 개인의 감상으로 변한 것 같지만, 이번 신극장판 첫번째는 작품으로나 대중적으로 성공작이라고 평가해야 할 듯 하다. 남은 3작품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지만, 기존의 에바와는 다른 작품이 될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예술작품은 메세지의 의미가 애매모호하고 분명하지 않을수록 성공적인 작품으로 간주된다"는 움베르트 에코의 말처럼(apocalittici e Integrati中) 마지막이 어찌될지는 만드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성공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