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제 6회 챔프 수퍼 만화 대상에서 『헌터』로 데뷔. 1995년 『출동! 먹통 X』로 만화 매니아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으며, 단편집 『파이팅 브라더』를 발매하고 현재 시공사의 만화 잡지 「기가스」에서 『건비트』를 연재하고 있다.

고병규의 경력을 글로 쓰면 단지 저 석 줄로 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저 얼마 없는 작품들, 특히 전설처럼 되어버린 『출동! 먹통 X』에 대한 만화 매니아들의 지지는 고병규에 대한 저 설명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기분이 들게 한다. 90년대 들어 소년만화 잡지의 신인 발굴로 인해 등단한 젊은 작가들 중에서도 고병규는 강한 개성을 드러냈다. 데뷔작 『헌터』에서부터 『출동! 먹통 X』에서 화려하게 꽃피운 그의 패러디 감각은, 전세대의 개그 만화와 뚜렷이 선을 긋는다. 고병규의 출사는 이 땅에 젊은 감각의 패러디 개그, 혹은 매니아 취향의 개그가 태동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만화를 보고자란 세대'의 '만화적 개그 감각'이 국내만화에서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패러디라고 하면, 이미 국내에서 부동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작가 김진태를 빼놓을 수 없는데, 고병규의 패러디 감각과 김진태의 패러디 감각은 조금 그 성질을 달리한다. 김진태가 온갖 분야를 넘나들며 대중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가벼운 패러디를 구사하는 데 비해, 고병규의 소재 혹은 감각은 앞서 언급했다시피 다분히 매니아적이고 또한 매니아 취향인 패러디 작품을 선보였다. 『출동! 먹통 X』에서는 7,80년대의 일본 고전 로봇 애니메이션을 그 패러디의 칼날 아래 두었고,『파이팅 브라더』에서는 유명 SF영화에 기존 만화를 접목시키거나, 만화적 개그 감각을 더한 작품들을 실었다. 이러한 연유로 그에 대한 만화 매니아층의 지지는 필연적인 것일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어쩌면 작가 고병규에게 있어서 하나의 족쇄인지도 모르겠다.

개그만화가라 하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잘 그린' 극화체보다는 코믹한 그림체를 생각하기 쉬우나 고병규는 극화적 인물뿐 아니라 메카닉, 병기의 묘사 등에서도 뛰어난 솜씨를 보여준다. 즉 작가 고병규는 패러디 개그라는, 어찌 보면 그의 재능을 이미 검증 받은 분야만이 아닌 하드보일드한 SF물, 혹은 액션물에 욕심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미 패러디 작가라는 이미지가 어느 정도 굳어진 탓인지 그의 첫번째 외도(?)인 초능력SF물 『가더』는 실패를 맛보았다. 스토리 작가 전진석과 함께하고 있는 『건비트』는 '실력있는 개그만화가'라는 꼬리표를 떼어버리고 스스로의 만화 세계를 한층 넓히고자 하는 작가 고병규의 두번째 출사표인 셈이다.

한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룬 한 사람이 또 다른 분야에서 성공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기존의 결과물을 뛰어넘거나 그에 준하는 작품을 생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기에 '보장된 성공'(수익이나 금전적인 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대한 평판을 뜻한다.)을 팽개치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현재 휴식기간을 갖고 있는 고병규의 도전이 성공적인 결실을 맺어 만화가로서의 그에 대한 평가가 한 단계 상승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하성호

*이 글은 부천만화규장각과 하성호님에게 저작권이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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