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하는 영화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그동안 영화를 꾸준히 봤지만, 저에게 글을 쓰게 할 만큼 매력이 있는 영화가 부족했던 탓인지 진지하고 긴 영화얘기가 좀 뜸했습니다. 그에 대한 반등인지 이번에는 조금 더 진지하고 긴 영화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

 문화는 시대상의 반영입니다. 작년 우리는 '다크나이트'를 통해 영화와 딱맞는. 누가 영웅이고, 누가 범죄자인지 모를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하고, 등장인물의 행동들까지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문제작이 나왔듯이 현재 문화 매체에서는 선과 악의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는 결과이기도 합니다.

[앨런 무어], [데이브 깁슨]의 그래픽 노블(쉽게 말해서 만화)를 영화화한 동명의 영화 '왓치맨(Watchmen)'은 이런 선과악, 정의, 평화의 개념에 대해 우리에게 다시 한번 묻는 영화입니다.

 코믹북으로는 유일하게 1998년 SF상 휴고상 수상, 타임지 선정 1923년이후 발간된 100대 소설 베스트에 선정, 이것이 영화원작이 가진 화려한 경력입니다. [앨런 무어]는 이미 영화화된 '브이 포 벤데타', '프롬헬'의 원작자입니다. 이 원작은 이미 발매때(1986년)부터 영화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코믹북의 판권을 이십세기 폭스가 사면서 시작된 '왓치맨' 영화화는 세번의 각본가 교체, 세번의 제작사 변경, 세명의 감독([테리 길리엄], [폴 그린그래스], [대런 애로노프스키]) 하차라는 화려한 경력(?)을  거치며 2009년 겨우 완성됐습니다. 원작자인 [앨런무어]는 "'왓치맨'은 코믹북이다. 영화도, 소설도 아니다. 나는 이 책을 문학, 영화가 표현할 수 없는 방식으로 쓰고 디자인했다”라고 공언했을 정도니 말입니다. 당시 감독을 맡았던 [테리 길리엄]역시 영화감독을 맡고 엄청난 각색 작업에 지쳐 "TV 시리즈로나 겨우 소화할 이야기"라는 말로 제작을 포기했으니, 이 영화가 어떤 결과물을 내놓던 원작을 뛰어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입니다. 다음 감독들 역시 자기의 역량을 넘어서 "잘해봤자 본전이고 못하면 자기 욕만 먹을 영화"를 할 것이라는 생각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리고, 잭스나이더가 영화를 완성합니다. 영화가 나오고 비판을 많이 받고 있겠지만, 완성했다는 것에 그에게 칭찬을 해 주고 싶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워터게이트등 최악의 정치범죄를 저질렀던 범죄 대통령 닉슨이 3선에 성공하고, 미국은 왓치맨들의 도움으로 베트남전에 승리한 1986년의 대체역사에서 시작됩니다. 그렇다고 평화로운 것은 아닙니다. 급속히 고갈되어 가는 에너지 자원, 아프카니스탄 문제로 인해 미국과 소련과의 냉전은 훨씬 악화되어, 핵 전쟁의 공포를 안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이전에 일종의 '자경단'같은 존재인 '왓치맨'들은 1977년에 상원의원 ‘킨’이 발의한 법령으로, 코스튬을 입은 히어로와 악당들의 활동을 금지되고 정부와 협력하는 왓치맨들만이 살아남고 나머지는 은퇴하여 지내던 때입니다.
 어느날 왓치맨 활동을 하던 '코미디언(the Comedian)'이 살해당하고, 그의 동료였던, 로어셰크(Rorschach)는 그의 죽음의 의문을 풀고자 옛날 동료들을 만나면서 그의 죽음뒤에 숨겨진 거대한 음모와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영화에 나오는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슈퍼히로들과 차이가 있는 왓치맨에 대해서 알아보죠.

 쉽게 얘기해서 배트맨과 수퍼맨의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극중에는 실제 초능력을 가진 닥터 맨해튼(Dr. Manhattan)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나머지 왓치맨들은 조금 강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영화는 전성기를 지난 왓치맨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은퇴 후 부자가 되어 있거나-오지맨디아스 (Ozymandias), 정부와 협력하고-코미디언, 닥터 맨해튼, 실크스펙터(silk Spectre), 조용히 과거를 추억하며 살거나-나이트 아울 Ⅱ(Nite Owl Ⅱ), 비밀리에 활동을 계속하기도 합니다.-로어셰크

 정의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가면을 쓰고 일어섰던 '왓치맨'들은 잊혀져 가고 있었지만, 시대는 그들이 사라졌다고 평화로와 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미.소간의 냉정과 핵전쟁의 공포가 그들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닥터 맨허튼'과 '오지맨디아스'는 새로운 에너지로 이것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정의로운 '왓치맨'만 있지는 않습니다. 정부의 온갖 구린일은 도맡아 하면서 자기의 욕망실현도 추구하는 '코미디언'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코미디언'은 마치 패권주의 미국의 폭력상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배트남에서 임산부를 죽이고, 암살과 남미국가의 테러, 시위대 난사 등 미국이 세계의 평화를 지킨다고 자처하면서 보여준 어두운 모습을 대변합니다. 영화는 코미디언을 비롯해 각 왓치맨들의 과거를 보여주며, 왜 그들이 지금의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모습을 이해시키려 합니다. 영화는 원작의 비주얼을 충실하게 재현했습니다. 원작의 컷과 영화의 컷을 보면, 영화가 얼마나 원작에 충실하게 보여지려고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왓치맨들은 수퍼맨처럼 고민도 고통도 없는 수퍼영웅이 아닌 우리와 같이 괴로워하고 실수도 하는 인간이고, 자신의 자리에서 선택을 하게 됩니다.

왓치맨을 보면서 각 왓치맨들의 모습이 우리가 사는 인간군상의 대표적 행동들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원작이 아닌 영화를 보고 생각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먼저얘기한 '코미디언'은 인간의 추악한 행동들을 상징합니다. 다른 쪽으로 보면 어느 세력에나 있는 폭력 과격파들입니다. '닥터 맨허튼'은 이상주의자이며 방관자입니다. 옳바른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만, 적극적으로 그것을 막지 않고 양비론을 펴는 일종의 쿨게이? 같은 존재로 영화속에 나타냅니다. '오지맨디아스'는 제가 볼때 히틀러같은 존재입니다. 극단적 좌파거나 극단적 우파같은? 물론 싸이코패스같이 양심이 없지는 않지만,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있는 그런 상징입니다. '로어셰크'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정의와 평화를 실천하려는 존재입니다. 그는 세상을 위해 자기를 희생시킬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나머지, '나이트아울'과 '실크 스펙터'는 삶의 안정을 위해 침묵하는 존재들입니다.

  영화가 '다크나이트'만큼의 메세지와 재미를 선사하지는 못합니다. 특히 아쉬운 것은 '오지맨디아스'의 묘사입니다. 원작에 비해 그가 어떠한 이유때문에 그런 행동들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부족하고, 그의 행동이 고뇌에 찬 행동으로 보여지지도 않습니다. (곱상하게 생긴 얼굴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영화를 좀 더 단순화 시켜줄 지는 모르지만, 원작의 메세지를 실어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비주얼적으로는 재현했지만, 스토리적으로는 못미친 결과의 가장 큰 요소라면 이 부분을 꼽고 싶습니다. 뭐 그래도 이정도만 해서평작이상을 올려준 것만으로 감독에게 뭐라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원래 [잭스나이더 감독]이 각본을 받았을 때는 '닉슨정부'를 '부시정부'로, 미국의 적을 아랍 테러리스트로 했다는 것을 원작으로 다시 바꿔준 것만으로도 잘 한 일이라고 보기때문입니다. 원작자인 [앨런무어]가 영화를 비난했다고 영화를 졸작으로 얘기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분은 원래 자기 작품 영화로나온거 보지도 않는 분입니다. 특별히 이 작품만 그렇지는 않다는 거죠.
 물론 기존의 유쾌한 슈퍼히로물이나 복잡한 스토리 싫고 치고 터지는 액션을 좋아하셨던 분들에게는 매트릭스같은 모습을 기대했다가뒷통수 맞았다고 주장하는 '브이 포 벤데타'같은 케이스도 생기겠지만, 비주얼에 만큼은 능력을 인정받은 감독이라 조금은 위로가되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아주 만족스럽게 봤습니다.

 원작자인 앨런무어는 '브이 포 벤데타'에서 빅 브라더(사회통제 권력으로서의 감시 체제)를 통한 사회 통재로 유지되는 세상을 그렸습니다. 그 공포로 지배되는 세상에 가면을 쓴 '브이'가 대항하고 그의 죽음으로 사람들은 그들을 지배하는 부당한 정부에 대항하기 시작합니다. 영화 '왓치맨'에서도 비슷한 의문이 있습니다. "평화를 위해 어느 한쪽을 희생시키는 것이 정당한 것이냐? "는 것입니다. 로어셰크가 얘기하는 "시체 더미 위에 평화로운 낙원"이 옳은 것이냐는 의문이 던져집니다. 오지맨디아스가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 추구했던 행동은 절대로 옳은 행동이 아닙니다. 그런 행동을 한 사람은 극중 대사에도 나오는 '히틀러'와 동일한 것입니다.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 수많은 목숨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희생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어떠한 의미와 사상에 관계없이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봅니다.

  설령 그렇게 시체 더미 위에 평화가 온다고 한들 그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평화가 아니며, 진실을 외면하고 사는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저희 아버지 세대때는 박정희나 전두환 시대가 평화롭고 살기 좋았다고 하시며, 그 시대를 그리워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때는 표면적으로는 평화로왔을 겁니다. 인혁당 사건, 광주 민주화 사태,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 같은 소수의 희생을 통해서 말입니다. 영화속에서 닥터 맨허튼도 말하지요 "영원한 것은 없다."고 그런 거짓 평화는 언제고 무너집니다. 그 정의를 앞세우던 미국 부시정부가 붕괴되는 것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시민들 역시 그를 재선까지 시켜주며, 소수의 희생을 통해 그들이 평화를 지켜줄 수 있다고 믿었지만, 결과가 어떤지는 지금도 매일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평화가 다시 무너지면 다시 오지맨디아스 혹은 제2의 다른 존재가 누군가의 희생을 주장할것이 뻔합니다.

이 영화를 보고 저는 과연 나는 어떤 왓치맨같은 행동을 할 것인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로어셰크같은 자신이 피해를 입으면서까지 타인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행동할 것인가? 나이트 아울처럼 알면서도 침묵하며, 거짓평화를 누릴 것인가?(그러나 그들조차 그들이 살아있음을 느낄 때는 가면을 쓴 왓치맨일 때였습니다.) 고민하게 합니다. 영화 왓치맨의 감상평을 마지막 메세지를 끝으로 마칩니다.

"당신은 누구편에 서서 행동할 것인가? 모든 건 당신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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