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규장각 작품론 내 집으로 와요 전문가 리뷰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게 되는 본능 가운데 하나가 바로 표현에 관한 욕구이다. 그리고 그 욕구가 평범한 정도를 넘어서게 되면 대부분 예술가라는 명칭을 받게 된다. 예술가들이 보여주는 세계는 때로 깊은 통찰이 되기도 하며 혹은 다양한 가치관을 드러내기도 한다. 표현되는 방식에도 다양한 창구가 있다. 역사 이래로 문학과 음악, 미술, 무용 등의 형태로 시도되어 왔으며 산업혁명 이후에는 과학기술을 접목시킨 새로운 장르가 탄생되기도 했다. 사진과 영화, 만화 등은 근대화가 인류에게 선물한 예술장르일 것이다. 이처럼 복잡다단한 예술의 세계 가운데 <내 집으로 와요>는 만화라는 장르를 통해 사진이라는 장르를 진지하게 탐색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작품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이야기의 중심을 잡고 있다. 무엇보다 아야와 미키오의 아기자기한 러브스토리가 이야기의 가장 큰 축으로 자리 잡는다. 연애의 시작에서부터 위기, 재결합, 이별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의 감정변화는 독자들에게 지속적인 흥미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표면적으로 작품은 연애드라마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났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헤어지게 되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으며,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에서 주인공들의 감정을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밀도 깊게 그려낸다. 특히 아야가 주인으로 있는 방이 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연애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공간으로서 제목 <우리집으로 와요>를 밑받침해주는 공간이다. 한편, 주인공들이 피아노와 사진이라는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해나가는 것이 또 다른 이야기의 축이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피아노 연주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던 아야는 자신의 이름이 걸린 음반을 발매할 정도로 성공한다. 미키오 역시 취미로만 생각하던 사진을 통해 프로작가가 되기에 이른다. 물론 그 사이 주변인물들의 격려와 질타는 미키오의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작품은 이처럼 사랑과 일, 연애와 꿈이라는 지극히 상투적이고 보편적인 주제를 미묘한 감정의 흐름과 진지한 스토리 구성을 통해 감동의 드라마로 연출해 나간다.

10대들의 사랑에서 풋풋한 향기가 느껴진다면 20대의 연애에는 뜨거운 열정이 있다. 10대라는 연령대가 이제 막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하는 시기인 반면 20대는 성년으로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다져나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서로의 정체성이 부딪혀서 불꽃을 만들어낸다. 그 불꽃이 때로 서로에게 상처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엔 잘 모른다. 만나면 즐겁고 같이 있으면 행복하니 자신의 아이덴디티 쯤이야 쉽게 잊혀질 만한 것이다. 아야를 사귀기 시작하는 미키오의 처음 모습이 딱 그랬다. 그녀를 보면 즐겁고, 만나지 못하면 괜히 안절부절했다. 자신의 영역을 전부 내놓아도, 자신의 감정을 모두 휩쓸고 가도 그 모든 것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랑의 파도가 쓸고 간 자리에 자신의 정체성으로 치환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특히 미키오와 아야에게는 사진과 음악이라는 특별한 자신만의 고유의 세계가 있다. 그래서 평범한 연인들보다도 자신의 정체성을 가리기가 쉽지가 않았다. 한번 쌓아올린 성은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되고, 급기야 서로에게 이별을 고하고 만다. 이별이 모든 것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아니다.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 그러니 아야가 미키오와 함께 했던 공간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은 독자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 두 주인공은 사라지고, 그들이 나누었던 대화만이 허공에서 부딪힌다. 그 장면을 보는 독자들은 어쩌면 두 인물이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 알콩달콩하게 살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정식출간되기 전 <연인>, <러브 파트너> 등의 이름으로 유통되기도 했던 이 작품은 남녀사이에 벌어지는 연애일상을 섬세한 감정표현으로 풀어 가는데 능한 하라 히데노리의 대표작이다. 독자들이 이 작품을 보고 ‘나도 한번쯤 이런 연애를 해봤으면’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두 인물이 맺어진 것이 아니라 헤어짐으로 끝나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완성된 사랑은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지만 헤어짐으로 끝나버린 사랑은 영영 아쉬운 추억으로 간직되기에, 모두 그런 추억을 가지고 싶지 않겠는가.

김성훈

*이 글은 부천만화규장각과 김성훈님에게 저작권이 있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