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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규장각 작품론 레가타 by안성환

YaWaRa 2007. 8. 17. 07:57
만화규장각 작품론 레가타 by안성환

특유의 감수성과 세심한 심리묘사로 국내에도 수많은 매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는 만화가 하라 히데노리는 그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오는 만화마다 자신의 팬들을 만족시키는 고유의 색깔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아다치 미츠루와 비슷하다. 두 작가 모두 자신만의 특징적인 화법(話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주인공들의 섬세한 심리묘사나 깔끔하고도 여운이 남는 연출방식, 독특한 스토리 진행방식 등에서 서로 대비되면서도 유사한, 각자의 개성이 돋보이는 작가들이라 하겠다. 이 두 작가의 작품은 한 번 잡으면 끝까지 놓을 수 없는 강력한 중독성이 있는데 아다치 미츠루가 ‘잔잔한 여운이 남는 아련한 청춘의 느낌’이라면 하라 히데노리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했던 영원히 잡아두고 싶었던 그 순간’에 대한 섬세함이 돋보이는 작가라 하겠다. 이 작품에서도 ‘안타까움’의 정서로 대변되는 작가의 개성이 잘 드러내며 천천히 완성 되어가는 한 편의 사랑이야기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류오대학 조정부에서 ‘전설의 더블스컬’로 불리던 쿠라타 겐지와 오사와 마코토는 세계를 노릴만한 역량의 2인조였으나 비오는 어느 날 밤, 연습중의 사고로 쿠라타가 죽자 오사와는 조정부 합숙소를 떠난다. 쿠라타의 애인이자 오사와의 고교동창생이기도 한 전 조정부 매니저 미사오는 쿠라타가 죽은 지 1년째 되던 날, 다시 조정부 합숙소로 돌아올 결심을 한다. 그리고 그날 밤, 몰래 합숙소에 돌아와 혼자 쿠라타의 오어를 만지며 회상에 잠기던 오사와는 미사오와 재회한다. 미사오는 그건 단지 사고였을 뿐이라며 다시 조정부로 돌아와 달라고 오사와를 설득하지만 오사와는 그건 사고가 아니었다며, 네가 사랑하던 사람을 죽인건 자신이라며 미사오의 권유를 거절한다.

죽어버린 친구와 홀로 남겨진 친구의 애인, 그리고 사실은 오래전부터 짝사랑해왔던 친구의 애인이었던 그녀, 언뜻 보기에 진부해 보이는 설정일지 몰라도 하라 히데노리가 손을 대면 확실히 다르다. 떠난 남자와 남겨진 여자, 그리고 그 꿈을 계승해야할 남자 사이를 적절히 오가며 하나하나 감정의 겹을 두텁고 잔잔하게 쌓아가는 그의 솜씨는 이제 대가(大家)의 관록에 접어든 자신의 연출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 작품은 또한 조정(漕艇)이라는 대중적이지 못한 스포츠장르를 이야기의 소재로 선택하면서 독자에게 신선한 생소함을 주는데, 그간 “청공”이나 “그래, 하자”등의 스포츠만화로 관록을 쌓은 하라 히데노리에게는 그것이 설령 생소한 분야일지라도 독자에게 재미를 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지 오어인 채로는 보트는 앞으로 나가지 않아...이대로 언제까지나 멈춰있어서는 안되잖아...다시 젓기 시작해야만 해”
다시 조정부의 매니저로 돌아온 미사오는 오사와를 다시 데리고 돌아올 결심을 하고 미키에게 오사와가 사는 곳을 묻는다. 그러나 오사와는 쿠라타가 죽던 날 밤의 일을 떨쳐 내지 못한다. 그날 밤, 쿠라타는 오사와에게 물었다. “오사와, 너 미사오 좋아하냐?” 그게 무슨 소리냐며 대답을 얼버무리는 오사와에게 쿠라타는 다시 말한다. “승부를 내자, 오사와, 미사오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나와 시합해” 그리고 벌어진 시합에서 쿠라타가 탄 보트가 뒤집히고 결국 목숨을 잃는다.

안성환

*이 글은 부천만화규장각과 안성환님에게 저작권이 있는 글입니다.